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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맛집

안동 가볼만한곳 베스트10 놓치면 안되는 관광지

리키마루 2021. 8. 25. 19:42

유교문화의 고장 경상북도 안동의 가볼만한곳을 소개합니다.

 

1. 체화정

 

안동 가볼만한곳 체화정

 

1761년(영조 37)에 창건하여 만포(晩圃)이민적(李敏迪)이 학문을 닦고 형인 이민정(李敏政)과 함께 기거하면서 형제간의 우의를 돈독히 한 장소로도 유명하다. 정자의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중층(重層) 팔작지붕집이다. 앞에는 3개의 인공섬이 있는 연못이 있다. 

 

2. 병산서원

 

안동 가볼만한곳 병산서원

 

병산서원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교적 건축물로서, 류성룡과 그의 셋째아들 류진을 배향한 서원이다. 병산서원의 전신은 풍산현에 있던 풍악서당으로, 고려말부터 사림들의 학문의 전당으로 1614년 서애 류성룡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존덕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봉안했다. 1868년 대원군 서원 철폐령이 내려졌을 때 그 대상에서 제외된 전국 47개, 안동 2개소 중 한 곳이다. 3월과 9월 초정일(初亭日)에 향사하고 있다.

 

3. 하회마을

 

안동 가볼만한곳 하회마을

 

조선 시대의 성리학자인 겸암 류운룡 선생, 서애 류성룡 선생의 출신 고장으로 유명한 이 곳은 대대로 풍산류씨가 살아 오는 동성부락이다. 낙동강물이 흐르다가 이 지역에서 마을을 감싸 돌면서 흐른다고 하여 ′하회′라는 지명이 붙었다. 별신굿탈놀이와 하회탈이 유명한 마을이다.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보물로 지정된 입암고택(사랑채 : 고려양식, 안채 : 이조양식, 불천위 사당 : 2채)과 충효당(경내에는 영모각이 있음.)을 비롯하여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고택과 정사들, 서낭당, 정려각, 노거수 등이 있음.

이 마을은 조선 전기 이후의 전통적인 가옥군, 영남의 명기(名基)라는 풍수적 경관, 오랜 역사적 배경, 별신굿과 같은 민간전승 등이 잘 보존된 민속마을이다. 전국유수의 풍산 류씨 동성촌락이며, 그 터전은 낙동강의 넓은 강류가 마을 전체를 동·남·서 세방향으로 감싸도는 명기이다. 지형은 풍수학적으로 태극형(太極形)·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다리미형이라고 한다. 이곳은 대체로 허씨, 안씨 등의 유력한 씨족이 살아왔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1635년(인조 13)의 기록을 보면 벌써 류씨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류씨의 입향조는 8세 전서공 류종혜(典書公 柳從惠)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과 같은 동족기반은 중흥조 류운룡(柳雲龍)·류성룡(柳成龍)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류운룡은 시조에서 14대의 종손이며 류성룡은 지손인데 이 두 계손들을 겸암파(謙菴派)·서애파(西厓派)로 부르기도 한다.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숲이 절경을 이루며 조선전기 이래의 건축물과 하회별신굿탈놀이, 선유줄불놀이 등의 민속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어 안동의 전통문화를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민속마을이다.
이 마을을 감싸도는 화천(花川)은 낙동강의 상류이며 그 둘레에는 퇴적된 넓은 모래밭이 펼쳐지고, 그 서북쪽에는 울창한 노송림이 들어서 있어 경관이 아름답다. 강류의 마을 쪽이 백사장인데 반해 건너편은 층암절별으로 여러 정대(亭臺)가 자리잡고 있어 승경(勝景)으로서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다. 강의 최대폭은 대략 300m이고 최대 수심은 5m에 이른다. 강 건너 인근과의 교통수단은 나룻배이며, 과거에는 음력 7월 보름에 부용대 밑에서 시회가 열렸으며 유명한 줄불놀이가 벌어졌었다. 이 강상유화(江上流花)의 놀이는 화회별신굿과 함께 이 고장의 오랜 민간전승놀이이다. 별신굿에 쓰이던 가면(하회탈과 병산탈)들은 국보(12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제작연대는 고려시대로 추정되어 하회마을의 역사적 배경을 잘 말해주고 있다.
풍산으로부터의 진입도로와 연결된 큰 길이 마을 중심부를 동서로 관통하는데 이 마을길 북쪽을 북촌, 남쪽을 남촌이라 한다. 현재 120가구에 290여명이 살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곳은 안동양진당(306호)과 충효당(414호)이 있고, 중요민속자료로는 하회북촌택(84호), 하회원지정사(85호), 하회빈연정사(86호), 하회류씨주가옥(87호), 하회겸암정사(89호), 하회남촌택(90호), 하회주일재(91호) 등이 있다. 이들 지정 가옥들은 모두 류씨집안의 소유이며, 그 중에서도 규모나 유래로 보아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양진당, 충효당, 북촌택, 남촌택, 옥연정사, 겸암정사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전통가옥들 외에도 소규모의 토담집과 붕담집은 기본적 건축재료인 진흙만으로 벽체를 쌓아올리는 원초적 민가축조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평면구조도 一자집, □자집, 튼□자집 등 다양한 민가형식을 보이고 있는데, 과거 신분제사회에서의 반상(班常)의 생활을 볼 수 있는 풍부한 자료들이라 할 수 있다.

 

4. 부용대

 

안동 가볼만한곳 부용대

태백산맥의 맨 끝부분에 해당하며 정상에서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하회마을 관광 백미 중의 하나로 부용대라는 이름은 중국 고사에서 따온 것으로 부용은 연꽃을 뜻한다. 처음에는 북애(北厓)라 했는데, 이는 하회의 북쪽에 있는 언덕이라는 뜻이다. 아래로 낙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옥연정사, 겸암정사, 화천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5. 안동 선비순례길

 

안동 가볼만한곳 안동 선비순례길

 

안동호의 절경과 다양한 유교문화유적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길이 91km, 9개 코스의 자연친화적인 탐방로이다. 코스 내에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선성수상길과 함께 도산서원과 이육사문학관을 비롯하여 고택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천천히 걸으며 힐링관광 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안동 선비순례길 코스

 


1코스 : 고고한 선비정신을 지키며 살았던 군자의 흔적이 남아있는 선성현길
1코스는 도산구곡 중 첫번째 물굽이인 운암곡 주변을 둘러보는 길이다. 흔히 안동을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고 하는데, 선성현길에는 고고한 선비정신을 지키며 살았던 군자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마을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하여 군자리라는 이름을 얻은 외내마을부터 선비들이 호연지기로 인의를 기르던 예얀향교, 물위로 늘어진 선성수상길을 지나 한국문화테마파크까지, 선성현길에서는 수많은 선인들이 우리 앞을 걸어가며 길을 안내한다.

2코스 : 퇴계선생의 숨결이 깃든 도산서원길
월천서당은 월천 조목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조목은 퇴계 이황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이황을 가까이 모시면서 학문 연구에만 주력하였다. 도산서원 길은 스승과 제자가 만나는 사제의 길로 퇴계 선생이 만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던 도산서원부터 생을 마감하고 깊은 잠에 든 묘소를 지나, 퇴계의 후손들이 청빈한 선비의 자세를 지키며 살아온 원촌마을까지. 도산구곡길 어느 구간보다도 퇴계의 숨결이 살아 있는 길이다.

3코스 : ‘광야’ ‘청포도’를 노래한 이육사의 고향 원촌마을을 지니는 청포도길
이육사가 태어난 원촌은 남향터에 마을 뒤로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앞으로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기름진 들판과 그 너머로 느리지도 급하지 않은 강물이 흘러가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명당이다. 궁벽한 산촌마을이지만 이런 사색의 땅엔 필연적으로 인물이 나기마련이어서 수몰 전 원촌에는 참판댁, 대감댁, 진사댁, 상주댁, 아산댁, 너다래댁, 언양댁, 병성댁, 서울댁, 영혜댁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육사따님인 이옥비 여사가 살고 있는 목재고택을 비롯한 네 채만 남아 있으며 마을 입구에는 원촌이 배출한 대표적 인물 이육사를 기념하는 문학관이 세워져 있다.

4코스 : 퇴계가 청량산을 향해 걷던 그림같은 장관의 퇴계예던길
올미재는 그야말로 안동 최고의 풍광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을 한번이라도 와 본 사람은 고산정과 농암종택과 월명담을 전국 최고의 정자와 종택과 소로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퇴계는 달빛 쏟아지는 월명담을 비가 오게 하는 연못으로 여겼다. 월명담을 지나 청량산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고산정이 나온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가송리 주민들이 매년 정월대보름 때 동제를 지내는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모신 당이 있다.

5코스 : 공민왕의 어머니가 이곳으로 피난하여 이름 붙여진 왕모산성길
청량산에서 흘러온 물은 산을 넘지 못해 왕모산성을 휘돌아나가고 산은 물을 침범 못해 내살미와 백운지라는 한 폭의 그림 같은 강 풍경을 만들어냈다.
바로 가까이에 청량산이 있고 산 위로 눈을 돌리면 육사가 ‘절정’의 시상을 다듬던 칼선대와 퇴계 선생 시절부터 철쭉 피는 봄날에 열렸던 문학토론장 월란정사가 있는 왕모산성과 마주하며 걸을 수 있다.

6코스 : 안동 최초의 서원 ‘역동서원’이 있었던 역동길
6코스에 강물은 적벽가를 부를만큼 융융하게 흘러간다. 한쪽은 퇴계학단의 거목인 조목을 낳은 다래에 월천서당이 있고 강 건너에는 자랑스러운 부포를 만든 봉화금씨의 성제종택과 진성이씨의 번남고택이 있다. 특히 부포에는 우리나라 이학의 조종인 우탁의 역동서원과 기름진 들과 더불어 천년세월을 견딘 부라원루가 있으며 그 앞 강변의 솔숲 ‘사평송’또한 마을의 풍취를 더하고 있어 오가는 이들의 쉼터가 되고 있다.

7코스 : 한국학 전문 연구기관 국학진흥원부터 도산온천으로 이어지는 산림문학길
7코스는 송곡고택과 선성아문, 호계서원과 예안향교가 있으며 한국국학 진흥원은 목판을 수집 보존하고 국역을 통해 안동정신을 외부로 송출하는 총 본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길의 35번 국도를 따라 도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산림박물관이 있다. 도산에 당도해서는 노송정 종가를 중심으로 그 우편에는 퇴계가 최초로 지은 수곡암과 온계 이해의 종택과 송재 이우의 신도비가 줄지어 있으며 그 반대편에 도산온천이 있다.

8코스 : 신라의 국권회복을 그리던 마의태자의 꿈을 찾아가는 여정 마의태자길
이곳은 신라가 망하자 태자였던 김일이 고려로의 귀부를 거부하는 세력을 이끌고 끝까지 신라부흥을 일으켰던 흔적이 용두산과 태자산 일대에 지명유래와 전설로 남아 있다. 신라의 남쪽을 뜻하는 신남리와 신라재, 태사사지 귀부 및 이수, 마의태자가 매일 올라가 망국의 신라 땅을 바라보았다는 용두산 중턱의 마의대, 마의태자의 한을 담고 있다는 달래재길, 나라를 다시 세우겠다며 군사를 훈련시켰다는 건지산과 투구봉은 영욕을 역사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도 남음이 있다.

9코스 : 퇴계 문하생들이 수운정과 건지산을 오가며 서도를 익혔던 서도길
퇴계의 문하생들은 수운정과 건지산을 오가며 서도를 익혔는데 일생 문자향을 피우고 글씨를 통해 성학을 이루는 길에 매진했다. 도산 서부리의 선성아문은 이숙량의 글씨고 퇴계묘비는 금보의 글씨인데 한 스승 아래 벗이 모두 명필인 예는 고금에도 드문 일이어서 칭송이 자자했다.

 

6. 안동호반자연휴양림

 

안동 가볼만한곳 안동호반자연휴양림

 

안동호반자연휴양림은 빼어난 자연경관과 인근 도산서원, 유교문화박물관, 이육사문학관, 청량산도립공원등과 어울려져 휴가철 피서지로 큰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주변에 산림과학박물관, 생태숲, 야생동물생태공원 등이 있어 볼거리가 많고 이들과 연계되어 산림문화 체험장 역할을 할 것입니다.
안동호반 자연휴양림은 건축형식에 따라 전통가옥 지구, 숲속의집 지구, 산림휴양관 지구로 나누어 조성되고 있습니다.

전통가옥 지구는 전통가옥형식으로 조성되어 찾아오는 이용객들에게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했으며, 숙박시설로는 초가집 3동(71㎡ 1동, 56㎡ 2동)과 기와집 1동(106㎡)이 있고 1동당 방이 3~5개 정도 갖추어져 있으며 각 동별로 예약이 가능합니다.

숲속의 집 지구는 독립된 산막 형식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다락방형 2동(43㎡-거실+다락방)과 단층형 2동(39㎡-거실+방, 57㎡-거실+방2)이 있습니다.

산림휴양관 지구는 연립산막의 형태로 숙박시설은 침엽수동, 활엽수동, 신나리동의 3개동에 각3~4실로 각각 다락방이 있으며, 47㎡형 10실과 94㎡형 1실이 있습니다.
구역내 산림문화교육관이 있어 단체연수 및 교육 등 행사시 이용에 편리하도록 조성되었습니다.

숙박시설에는 방마다 화장실겸 샤워장, TV, 침구류, 식기류, 취사도구 등이 비치되어 있어 간단한 준비로 여러 가족이 함께 휴양을 즐길 수 있게 했으며, 숯을 이용하여 숯불구이를 할 수 있게 했습니다.

 

7. 도산서원

 

안동 가볼만한곳 도산서원

 

이 서원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을 향사(享祀)하는 도산서원이다. 선생은 1561년(명종 16)에 도산서당 건립하고 학문연구와 인격을 도야하였는데, 선생이 타계하자 문인들의 발의에 의해 서당이 있던 자리에 서원을 건립키로 하였다.
1572년(선조 5)에는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에 모실 것을 결정하였으며 1574년부터 서원을 짓기 시작하여 1576년에 완공하였다. 선조는 도산서원이란 현판을 사액하였는데 그 편액은 당시의 제1인자라고 손꼽히던 명필 한호(韓濩)의 글씨이다. 도산서원은 크게 도산서당과 서원의 구역으로 나뉠 수 있는데 서당은 퇴계 이황 생전에 생전에 유생들을 모아 교육하던 곳으로 도산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선생의 실천적 학문과 검소함이 잘 나타나 있다. 도산서당, 농운정사, 역락서재가 도산서당의 구역이다.

 

8. 예끼마을

 

안동 가볼만한곳 예끼마을

 

안동 도산면 서부리에 위치한 예끼마을은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인해 수몰된 예안마을의 이주민들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행정구역상 예끼마을은 안동 도산면 서부리에 속하지만, 주민 일부는 여전히 예안마을이라고 부릅니다. 예안마을은 안동에서 가장 상권이 발전된 마을이었으나, 안동댐 건설 이후 경제적으로 쇠락했습니다. 2015년 유명 아트디렉터 한젬마와 인연으로 ‘도산 서부리 예술마을 조성사업’ 진행하게 되었고, ‘예술에 끼가 있다’는 뜻의 예끼마을이 되었습니다. 이후 마을 골목을 정비하고, 담장에 그림을 그려 벽화골목도 조성하며, 가게 간판들도 깔끔하고 개성있게 교체하기 시작하며 침체된 마을에 예술을 입혔습니다. 또한, 마을 내 과거 관아 건물(선성현)은 한옥 갤러리 근민당으로, 마을회관은 작가들의 화실로, 우체국은 공방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이처럼 예끼마을은 전통과 예술이 공존하는 이야기가 있는 마을입니다.

 

9. 봉정사

 

안동 가볼만한곳 봉정사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렀는데 능인대사가 젊었을때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고 있던 중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안을 환하게 밝혀 주었으므로 ′천등산′이라 이름하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더욱 수행을 하던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서 날리니 이곳에 봉황이 머물렀다하여 봉황새 봉(鳳)자에 머무를 정(停)자를 따서 봉정사라 명명하였다. 그 뒤 6차례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국보 제15호인 극락전, 국보 제 311호인 대웅전,보물 제 448호인 화엄강당, 보물 제449호인 고금당,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및 삼층석탑과 부속암자로 영산암과 지조암이 있다. 특히, 고려태조와 공민왕, 최근에는 영국의 여왕이 다녀가기도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봉정사가 자리잡은 천등산은 옛적에는 대망산이라 불렀다. 절 뒷산에는 거무스름한 바위가 산정을 누르고 앉아 있는데 그 바위 밑에 천등굴이라 부르는 굴이 있다. 능인대사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법문에 정진하기 위하여 대망산 바위굴에서 계절이 지나는 것도 잊고 하루에 한끼 생식을 하며 도를 닦고 있었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휘몰아치는겨울에도 "나무아미타불", 찌는 듯한 더위의 여름에도 "나무아미타불", 마음과 몸을 나른하게 풀어지게 하고 괴괴한 산속의 무서움과 고독같은 것은 아랑곳 없었다.
이렇게 십년을 줄곧 도를 닦기에 여념이 없던 어느날 밤 홀연히 아리따운 한 여인이 앞에 나타나

"여보세요. 낭군님"

옥을 굴리는 듯 낭낭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미처 능인이 고개를 들기 전에 보드라운 손길이 능인의 손을 살며시 잡지 않는가! 눈을 들어 보니 과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고운 살결에 반듯하나 이마와 까만 눈동자 오똑한 콧날, 거기에는 지혜와 정열이 샘솟는 것 같아 진정 젊은 능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 했다. 여인은
"낭군님" 다시 한번 맑은 목소리로 능인을 불렀다.

"소녀는 낭군님의 지고하신 덕을 사모하여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낭군님과 함께 살아간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사옵니다. 부디 낭군님을 모시게 하여 주옵소서."

여인의 음성은 간절하여 가슴을 흔드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그러나 능인은 십년을 애써 쌓아온 수련을 한 여인의 간청으로 허물 수 없었다. 능인은 준엄하게 여인을 꾸짖었다. "나는 안일을 원하지 아니하며 오직 대자대비 하신 부처님의 공력을 사모할 뿐 세속의 어떤 기쁨도 바라지 않는다. 썩 물러나 네 집으로 가거라!"

능인의 꾸중에 산도 크르릉 울리는 듯 했다.그러나 여인은 계속 유혹을 하며 쉽게 돌아가지 않았다. 능인은 끝내 거절하였으며 오히려 여인에게 깨달음을 주어 돌아가게 했다. 여인이 돌아서자 구름이 몰려 들더니 여인을 사뿐이 들어 하늘로 오르며

" 대사는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나는 천상 옥황상제의 명으로 당신의 뜻을 시험코자 하였습니다.이제 그 깊은 뜻을 알게 되었사오니 부디 훌륭한 인재가 되기를 비옵니다."

여인이 하늘로 사라지자 그곳에는 산뜻한 기운이 내려오더니 굴 주변을 환히 비추었다. 그때 하늘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또 울려왔다.

"대사, 아직도 수도를 많이 해야 할텐데 굴이 너무 어둡습니다. 옥황상제께서 하늘의 등불 을 보내드리오니 부디 그 불빛으로 더욱 깊은 도를 닦으시기 바라나이다."

그러자 바로 그 바위 위에 커다란 등이 달려 어둠을 쫓고 대낮같이 굴안을 밝혀주고 있었다. 능인은 그 환한 빛의 도움을 받아 더욱 열심히 수련을 하여 드디어 득도하여 위대한 스님이 되었다.하늘에서 내려온 등의 덕택 으로 수도하였다하여 그 굴은 ′천등굴′ 대망산을 ′천등산′이라 이름지어 불렀다고 한다.

 

10. 만휴정

 

안동 가볼만한곳 만휴정

 

이 건물은 보백당 김계행(寶白堂 金係行)공의 정자이다. 1500년(연산군 6)에 건립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중수를 거치면서 다소 변형된 듯 일부는 조선후기 양식을 보이는 부분도 있다.
선생은 조선 초의 문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 연산군의 폭정이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땅으로 낙향했다. 그 후 설못(현 소산2리)가에 조그마한 정자를 지었으나 길옆인 관계로 더욱 조용한 장소를 찾아 이 정자를 건립하였다.
길안면 묵계서원에서 개울건너 산곡간에 들어서면 웅장한 계곡에 반석위로 폭포를 동반한 곡간수(谷澗水)가 흐르는 절경을 이루는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된 정자의 전면쪽 3칸은 삼면이 개방된 누마루형식으로 누각 주위 삼면에는 계자각난간을 돌렸다.
뒤쪽 3칸은 어칸이 마루로 전면의 누마루와 연접되어 있으며 후벽의 문하부는 궁판이 높직하게 끼워져 있다. 양 퇴칸은 온돌방을 들였는데 방의 앞부분은 일반적인 쌍여닫이 세 살문을 달았으나 마루쪽으로는 띠살무늬의 세짝 들어열개문이 설치되어 있다. 전면쪽을 고스란히 개방하여 툇마루로 구성한 예는 흔하지 않으며, 약계정과 유사한 평면형식을 보이고 있다.
기둥 상부에는 연봉장식이 가미된 2익공양식의 촛가지가 돌출되어 있어 조선후기 작품으로 간주되지만 말기의 번잡한 양식과는 달리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창방위에는 연꽃을 새긴 화반을 놓았는데 비교적 공을 들여 조각하였다. 상부는 5량가로 대량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놓았으며 그 위에 제형판대공을 올렸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으로 처마앙곡과 안허리가 매우 날카로워 정자의 맛을 더욱 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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