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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유승민 프로필 대권 주자로서 장점및 단점

리키마루 2021. 8. 25. 21:00

국민의 힘 20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 유승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유승민의원

 

유승민은 1958년 1월7일생으로 경상북도 대구출신이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였고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다시 한국개발연구원으로 돌아왔다. 전공은 기업결합과 독과점 방지, 경쟁정책 등을 다루는 산업조직론이다.

 

1995년 한 세미나에서는 "재벌의 문어발식 경영과 소유 집중, 그룹식 경영 등으로 국민경제의 전반적인 집중현상이 계속 심화되는 것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비판하였다. 정계 입문 뒤에는 여의도연구소장(현 여의도연구원장)을 역임하였다. 때문에 대표적인 '정책 브레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치입문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유승민을 정계에 입문시킨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2000년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총재이자 유력 대권 주자였던 이 전 총재의 '경제 교사'로 정치권에 입문하였고, 원외임에도 당 싱크탱크의 수장인 여의도연구소장을 맡는 등 이회창 총재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왔다.

 

유승민의원은 역대 최장기 여의도연구소장으로 꼽힌다.이후에는 박근혜의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원조 친박'으로 분류되었다.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대립했던 제17대 대선 한나라당 경선 당시, 유승민 의원은 박근혜 캠프의 정책·메시지를 담당하던 핵심 측근이었다.

 

2011년에는 한나라당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대표최고위원에 당선된 사람은 홍준표 후보였고, 유승민 후보는 친박계의 지원을 받아 2위에 올랐다. 유 의원은 3위 나경원 후보, 4위 원희룡 후보, 5위 남경필 후보와 같이 선출직 최고위원이 됐다. 2012년에는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유승민 의원

 

유승민 학력

 

1964년 ~ 1970년: 대구삼덕초등학교 졸업

1970년 ~ 1973년: 대륜중학교 졸업

1973년 ~ 1976년: 경북고등학교 졸업

1976년 ~ 1982년: 서울대학교 경제학 학사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위스콘신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유승민 경력

 

1982년 1월 ~ 1983년 7월: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원
1984년 9월 ~ 1987년 5월: 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교 조교
1987년 12월 ~ 2000년 2월: KDI 연구위원, 선임연구위원
1994년 5월 ~ 1995년 5월: 한국산업조직학회 사무국장
1996년 3월 ~ 1997년 3월: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IR/PS대학원 초빙교수
1998년 4월 ~ 1998년 9월: 공정거래위원회 자문관
1998년 5월 ~ 1999년 9월: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2000년 2월 ~ 2003년 6월: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원 원장
2003년 3월 ~ 2011년 5월: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연구교수
2004년 6월 ~ 2005년 1월: 한나라당 제3정조위원장
2004년 7월 ~ 2005년 4월: 제17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2004년 5월 ~ 2006년 6월: 제17대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
2005년 1월 ~ 2005년 10월: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비서실장
2005년 10월 ~ 2008년 5월: 제17대 한나라당 국회의원
2005년 5월 ~ 2012년 5월: 제18대 국회의원 (대구 동구 을)
2008년 9월 ~ 2009년 4월: 제18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2008년 4월: 국회 혁신도시건설촉진 국회의원 모임 간사
2008년 9월: 제18대 국회 국방위원회 한나라당 간사
2009년 6월: 군용비행장 문제해결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 대표
2010년 6월: 제18대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
2010년 7월 ~ 2011년 6월: 한나라당 대구광역시당 위원장
2011년 7월 ~ 2011년 12월: 한나라당 최고위원
2012년 5월 ~ 2016년 5월: 제19대 국회의원 (대구 동구 을)
2012년 7월 ~ 2014년 5월: 제19대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
2014년 6월 ~ 2015년 3월: 제19대 국회 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2015년 2월 ~ 2015년 7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2015년 2월 ~ 2015년 7월: 제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
2015년 3월 ~ 2016년 5월: 제19대 국회 후반기 국방위원회 위원
2015년 3월 ~ 2016년 5월: 제19대 국회 후반기 정보위원회 위원
2016년 5월 ~ 2020년 5월: 제20대 국회의원 (대구 동구 을)
2016년 5월 ~ 2018년 5월: 제20대 국회 전반기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2016년 6월 : 국회 연구모임 Agenda 2050 정회원
2017년 1월 ~ 2017년 11월: 바른정당 상임고문
2017년 3월 ~ 2017년 5월: 바른정당 제19대 대선 후보
2017년 11월 ~ 2018년 2월: 바른정당 당대표
2018년 1월 ~ 2018년 2월 12일: 바른미래당 통합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
2018년 2월 13일 ~ 2018년 6월 14일: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2018년 7월 ~ 2020년 5월 : 제20대 국회 후반기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바른미래당 대구시당위원장 직무대행
바른미래당 대구 동구 을 지역위원장
2019년 9월 ~ 2020년 2월 :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 대표
2021년 3월 ~ 2021년 4월 : 국민의힘 4·7재보궐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상임부위원장
2021년 3월 ~ 2021년 4월 : 국민의힘 4·7재보궐선거 서울시장 보궐선거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

 

유승민 가족관계

 

아버지는 판사 출신으로 대구 중구에서 제13·14대 국회의원을 지낸 유수호이다. 조부는 유재영, 증조부는 유우제, 고조부는 통정대부를 지낸 유병호, 친형은 유승정 변호사이다.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유승민의 선거 유세를 도운 딸 유담이 크게 화제가 되었다.

 

※ 대권주자로서 장점

 

경제정책 전문성


현재 대선주자 가운데 몇 안되는 경제전문가 주자이며 좀 더 범위를 좁히자면 단 2명뿐인 경제학자 출신의 대선주자이다.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국내 최고의 국책연구기관인 KDI에서 근무했던 경제학자답게, 재정, 산업, 복지, 노동 등 전반적인 경제정책에 대한 전문성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전공이었던 재벌 분야에 대해선 다른 주자들보다도 구체적이고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된다. 게다가 유승민 본인 역시 동구 을 지역구 관리,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유승민 본인의 경제관인 경제적 자유주의, 재정 보수주의와 복지국가 이론이 조화된 따뜻한 보수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하였다.

 
투철한 안보관


경제학자 출신임에도, 안보 및 국방 분야에서도 전문성이 뛰어나며,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면서 호평을 받았다. 또한 군인들의 보훈에도 많이 쓰고, 매년 천안함 피격 사건이나 서해 수호의 날 등의 기념식에 참석해 유족들을 만나기도 하였다. 천안함 피격 사건 생존자인 전준영 씨 또한 유승민에 대해 고마움을 표한 바 있다. 


토론 실력


제19대 대통령 선거 TV토론에서 5명의 후보들 중 가장 잘했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토론 실력이 매우 뛰어나다. 정책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기 고유의 견해를 명확히 드러냈다는 평. 전문가들의 평도 유승민이 가장 좋았고, 여론조사에서도 유승민이 가장 잘 했다고 평가받았다. 특히 마지막 대선토론 연설에서 좌우를 막론하고 정연하다는 평을 받았다.

 

잠재력 있는 확장력


당내 대표적인 자유보수주의자, 온건 공화주의자로써 어느정도의 지지율만 받혀주면 중도층 심지어는 좌파 일부까지로 확장할 잠재력이 존재한다는 평이 있다. 과거 친박 핵심일 시절에도 남원정이나 소장파와 같이 당내 개혁을 도모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비박으로 재분류되었을 때도 정병국, 하태경, 이준석 등과 같이 당내 중도화와 자유보수주의를 확립하는 데 힘을 썼고, 2030들의 정치 진출에 큰 힘을 보태주었다. 원내대표시절 노무현 정권의 정책 중 일부를 칭찬했고 이를 계승하겠다고 발언하여 당시 좌파 일부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특히 따뜻한 보수라는 캐치프레이드는 좌우로 갈라치거나 자신의 지지층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소신


친박과 강경 보수에게는 배신자라고 언급할 정도이지만, 유승민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가리지 않고 긍정적인 것은 칭찬하고 부정적인 것을 비판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 정부와 틀어진 이유도 본인이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 쓴 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증세없는 복지는 허구"라는 명언을 남겼다가 친박의 찍어내기로 정치적 사망위기 까지 갔었다.

 

정책통


유승민은 경제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외교, 국방, 복지, 교육, 지역균형발전, 문화예술 등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여러 공약에 대해 본인이 스스로 입안을 한다는 점이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유승민이 한국개발연구원 소속으로 근무하고 1997년 외환 위기에 대한 보고서 작성 및 입안 등을 통해 정계에 입문하였다는 점, 여의도연구원 내 정책 연구원 경력 역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유승민이 국회의원을 하면서 한나라당 - 새누리당 - 바른정당 - 바른미래당 - 새로운보수당 - 미래통합당 내의 대표적인 정책통이었으며, 이는 유승민과 사이가 좋지 않은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장관 역시 인정한 바가 있다. 같은 친유계인 정병국 의원은 유승민 의원이 헌법 그 자체이며 컨텐츠가 좋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그리고 유승민 세대의 정치인 치고도 젠더 이슈에 대한 이해도가 상대적 높은 편이라 2030 청년 지지층들을 모으기 유리한 편이다. 실제로 본인도 바른미래당 시절부터 이준석, 하태경, 정병국과 같이 젠더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중도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 대권주자로서 단점

 

배신자 프레임


한 때는 친박계에 속했지만, 새누리당 원내대표였을 때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를 비판했으며, 박근혜 정부가 원하는 공무원 연금 개정안을 해결해 준 대신 야당이 요구했던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25],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배신의 정치"라고 규정했다.
이후에 유승민은 김무성과 함께 새누리당 내에서 박근혜 탄핵소추안 통과를 주도했고,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을 창당했다. 이로 인해 친박 및 강경 보수층으로부터 배신자, 내부총질이라는 비난을 줄곧 받아왔다. 대선후보가 되려면 먼저 당내 경선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러한 프레임은 대선 후보 선출에 큰 걸림돌이 된다.


중도~중도좌파 성향의 일부 정책


제19대 대통령 선거 공약들 중,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 탈원전, 공수처 설치, 비정규직 총량제 등 일부 공약들은 전통적인 보수층에게 어필을 하기 힘든 것들이다. 이는 중도와 좌파까지 포섭할수 있다는 장점이기는 하지만 전통적인 보수층들 입장에서는 이런 공약을 보고 "좌파면서 우파 표 받아가려 하지 말라"고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다.


리더십과 존재감의 부재


제19대 대통령 선거 이후부터는 존재감이 서서히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가 몸담고 있었던 바른정당은 의원들의 잇따른 탈당으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이후 안철수가 이끌던 국민의당과 합당하며 바른미래당이 출범했지만, 제7회 지선에서 참패했고 안철수, 손학규 등 국민의당 출신들과 갈등이 지속되었다.
이로 인해 유승민은 친유계 정치인들을 이끌고 바른미래당을 탈당해 새로운보수당을 만들었다. 물론 바른정당, 바른미래당의 분열을 모두 유승민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지만, 제20대 국회에서 그의 개혁보수 정치는 실패한 셈이다. 또한 새로운보수당과 자유한국당이 합당하면서 제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이는 낙선으로 인한 정치적 타격을 회피하는 듯한 인상을 줄 여지가 있었다.


일관성 없는 이미지


제19대 대통령 선거 때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달성, 탈원전, 강정마을 구상권 철회 등의 공약을 내세웠으나, 이후 해당 공약을 철회하고 사과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쪽도 있으나 보통 이러한 경우엔 정책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기 마련이다. 특히 이 중 최저임금 10000원 공약은 유승민 본인이 인터뷰를 할 때마다 거의 무조건 사과를 하고 들어갈 정도였다.

 


부족한 본인 홍보


가장 심각한 부분으로 대선주자 가운데 유독 정치력과 대중성이 떨어지는 후보라는 평을 받는다. 특히 유승민은 평소 활발한 공개활동을 하지 않고 칩거하거나 잠행을 자주 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대선 후보라면 공개적인 활동을 해서 인지도를 높이거나 유튜브, 방송 출연 등을 적극적 활용하며 비전을 알려야 하는데, 다른 주자들에 비해 이러한 공개활동량이 현저히 적고 오로지 페이스북만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현재는 원외 신분이고 당직을 맡지 않고 있어 원내에 있을 때보다 제약적일 수 밖에 없고, 본인도 정책 연구에 힘을 쓰고 있다고 하지만 정책 연구만큼 중요한 것이 자기 홍보인데 그런 면에서 많이 부족한 모습을 보인다. 태영호, 이준석, 하태경과 같이 2030들이나 중도층들이 가까이하고 본인의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것이 상당히 부족하다는 평가이며 이 부분을 해결하지 않을 경우 유승민의 지지율이 오르기는 힘들 것이다.

 

유승민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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