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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한국의 연쇄살인마들

리키마루 2017. 7. 28. 20:38





1. 강호순





경기도 서남부 수원, 안산, 용인, 평택, 화성, 의왕, 시흥, 오산, 안양, 군포 지역에서 여성을 연쇄적으로 납치하여 살해 범죄자이다.2009년 1월 27일 2008년 12월 19일 경기도 군포시에서 실종된 여자 대학생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추가 수사에서 2006년 9월 7일부터 2008년 12월 19일까지 경기도 서남부 일대에서 여성 7명이 연쇄적으로 실종된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처음에는 연쇄 살인을 부인하다 경찰이 증거를 제시하자 군포 여대생을 포함해 7명을 살해했다고 털어놓았다.강호순이 살해했다고 밝힌 부녀자는 노래방 도우미 3명, 회사원 1명, 주부 1명, 여대생 2명이었다. 2009년 2월 17일 2006년9월 7일 강원도 정선군에서 당시 정선군청에서 근무하던 여성 공무원 윤 모씨(당시 23세)를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한편 강호순은 2005년 10월 30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 장모 집에 불을 질러 자신의 장모와 처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서울고법은 2009년 7월 23일 강호순에 대해 살인·현주건조물 방화치사·존속살해·성폭력범죄처벌법 위반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의 혐의를 적용해 항소를 기각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강호순은 대법원에 상고하지 않아 2009년 8월3일 사형이 확정되었다.


2. 김대두





일제강점기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연쇄살인범이다. 1975년 8월 13일부터 10월 7일까지 55일 동안 전라남도 광산군에서 마을 주민 안종현(63)을 살해한 것을 비롯하여, 안군, 경기도 평택시, 서울 등지로 9차례를 걸쳐 모두 17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1975년 10월 7일 서울에서 피해자의 피가 묻은 청바지를 세탁소에 맡겼다가 이를 수상하게 여긴 세탁소 주인 하근배(26)의 신고로 검거되었다.그리고 연쇄 살인범 김대두는 체포되었을 때 현장검증에서 자신이 경기도 일대에서 일가족 단위로 4차례나 살해했다고 주장하였다. 그 이후 1976년 12월에 사형 선고를 받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고, 마지막에 사죄를 하였지만 결국 12월 28일 사형에 집행되었다.


3. 정두영



정두영 1999년 6월부터 2000년 4월까지 9명의 시민을 살해한 연쇄 살인자이다. 정두영은 지난 1999년 6월부터 강도행각을 벌이면서 17명을 살상하였다. 정두영은 18세 때인 지난 1986년 불심검문 중인 방범대원 김찬일(43)씨를 살해, 11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뒤 곧바로 절도죄로 붙잡혀 다시 6개월 동안 복역한 뒤 1999년 3월 출소했다. 이후 10개월 동안16번의 강도 짓을 했고 그 과정에서 9명을 무참히 살해했다. 주로 부산, 울산과 경남지역을 활보하며 살인강도 행각을벌였고 충남 천안에서 인질강도를 저지르다 체포되었다.정두영은 1968년 부산직할시에서 3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났지만 2세 때 아버지가 숨지고 어머니가 재혼하자 삼촌집에맡겨졌다. 정두영은 늘 자신의 왜소한 외모 탓에 심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는데 1986년 처음으로 살인을 저질렀을때의 동기도 단지 그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고아원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정두영은 체포 후 진술에서 남들처럼 평범한 가정을 갖고 싶었다고 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그때까지 절도 및 강도로 모은 돈을쓰지 않고 통장에 모았고 그 총액은 1억 3천만 원에 달했다. 그는 강도행각으로 총 10억을 모아 결혼도 하고 PC방과 아파트를 마련할 계획이었다고 했다.

2001년 1, 2심에서 강도살인죄로 사형을 받고 상고를 포기, 사형이 확정되었다. 1997년 이후로 더 이상의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형수로 현재도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4. 유영철





2003년 9월 11일 교도소를 출소한 유영철은 2003년 9월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숙명여대 명예교수 이씨(73세)와부인 이씨(68세)를 살해했으며, 2003년 10월 9일 종로구 구기동에서 강씨(85세), 이씨(60세), 고씨(34세)등 일가족 3명을, 10월 16일에 강남구 삼성동에서 유씨(69세)를 살해했다. 2003년 11월 18일에는 종로구 혜화동에서 김씨(87세), 배씨(57세)등 2명을 살해했고, 2004년 4월 13일에 노점상 안씨(44세)를 살해하고 시신을 월미도에 버렸다. 이에 앞서 2004 3월부터 그해 7월 13일까지는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총 여성 11명을 살해하여 서울 각지에서 주로 부유층 노인 또는 출장 마사지사 여성 등 총 20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한편 유영철은 2004년 7월 18일 체포되었는데 현장검증에서 26명을 살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8월 13일 구속 기소 되어 이문동 살인사건을 제외한 20명 살인범죄의 유죄가 인정되었으나 유영철은 대법원 상고 공판에서 형사처벌법 위반에 따라 성폭력범죄, 강간살인, 시체손괴 유기 및 1급 살인, 과실치사혐의에 의거에 따라 12월 13일 사형 선고를 받고, 2005년 6월 9일 대법원은 유영철에 대한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에 대한 원심을 확정하였다. 이후에 이문동 살인 사건의 진범이 다른 연쇄살인범인 정남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영철에 대한 사형은 아직까지도 집행되지 않고 있으며, 현 대한민국은 가장 최근인 1997년 12월 30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임기 중 23명의 사형을 집행한 이후로도 10년간 사형이 집행되지 않아 2007년 12월 30일부터는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로 간주되고 있다. 유영철은 미국의 잡지 `라이프` 2008년 8월 6일에 보도한, 20세기를 대표하는 연쇄 살인자 30인의 한 사람으로 뽑히기도 했다.

유영철은 2004년 7월 18일 체포되었는데 현장 검증에서 26명을 살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내장이 모자라는 사체가 몇 구 있어추궁했더니 식인도 했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26명을 살해했다는 주장은 추후에 유영철 본인이 이를 부인하고 정황도 맞지 않아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수사 담당자가 밝히기도 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살해한 희생자는 20명으로 확인이 되었다. 이후 8월 13일 구속 기소 되어 이문동 살인 사건을 제외한 20명에 대한 살인죄의 유죄가 인정되어 2005년 6월 9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고 현재도 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다.  유영철사건을 모티브로 영화 `추격자`가 제작되기도 하였다.


5. 김선자





김선자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검거된 범인이 여성인 연쇄살인 사건이며 대한민국에 서양 법과학이 들어온 이후로 최초로 검거된 사형수다.김선자는 잦은 카바레의 출입으로 채무가 많았고, 도박으로 인해 을 빌린 뒤 그것마저도 도박으로 잃어 빚에 쪼들게 되자 채권자와 본인의 아버지, 여동생을 청산염을 탄 건강음료를 먹여서 살해했다.1986년 10월 31일에 그녀는 이웃집에 살던 친구에게 함께 목욕탕에 가자고 제안했고 그 친구는 목욕탕에서 갑자기 심한 경련과 호흡곤란으로 즉사한 뒤 사인은 독극물 중독으로 밝혀졌으며 김선자는 그 사이 목걸이와 반지 등 패물을 가로챘다.그 뒤 그녀는 1987년 4월 4일에 대담하게도 시내버스 안에서 일을 벌였으며 한 여성이 독극물 중독으로 버스에서 쓰러져 즉사했다. 그녀는 김선자와 함께 계를 하는 회원이었고, 이 때부터 김선자는 경찰의 의심을 받게 되었다.1988년 3월 27일에 김선자의 아버지 김종춘이 친척의 결혼식을 다녀오던 중 딸 김선자가 건넨 건강음료를 마시고 시외버스 안에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아버지가 고령자인 것을 고려해 당시 법의학 지식이 없던 의사들에 의해서 노인성 심장마를 일으켜 숨진 것으로 마무리가 된 뒤 화장되었다.네번째 범행이 성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해 4월 29일에는 그녀의 동생 김문자역시 아버지처럼 같은 변을 당했으며 독극물 검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심장마비로 처리되었다. 김선자는 동생 김문자에게 약 천만원의 빚을 지고 있던 상태였고 여동생이 사망했음에도 동요하거나 슬퍼하는 내색없이 사망 확인후 여동생의 집을 뒤져 금품 및 귀금속등을 털어갔다. 이후 약 3개월 뒤인 7월 8일에 사촌조카인 손미림(46,1943년생)도 같은 변을 당했다고 한다.아버지와 동생을 포함해 5명의 목숨을 뺏아갔던 살인마는 사형을 선고받은 8년 후 1997년 12월 30일에 장기 미집행 사형수 22명과 같이 사형당했으며 이것이 사실상 대한민국의 마지막 사형 집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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