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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우승청부사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리키마루 2017. 9. 1. 20:35



생년월일: 1981년 10월3일

국적: 스웨덴

신체조건: 195cm, 95kg

포지션: 스트라이커

주로쓰는발: 오른발


클럽커리어


말뫼FF


















1996년, 이브라히모비치는 1996년에 말뫼와 첫 계약을 체결하였고, 1999년에는 스웨덴 1부 리그인 알스벤스칸에 속한 1군으로 승격되었다. 이 시즌에 말뫼는 리그를 13위로 마무리하며 2부 리그로 강등되었으나, 1시즌 만에 1부 리그로 복귀하였다. 아르센 벵거 감독은 이브라히모비치를 설득했지만 아스널에 합류시키는데 실패하였고, 레오 베인하커르 감독 또한 노르웨이의 모스와의 훈련 경기를 보고는 선수에 관심을 표명하였다. 2001년 3월 22일, 아약스와 말뫼와의 협상이 성공리에 마무리되면서 이브라히모비치의 암스테르담 행이 공식발표되었다.


아약스









이브라히모비치는 코 아드리안서 감독의 지도 하에 적은 시간의 출전에 그쳤으나, 2001년 11월 29일, 아드리안서 감독이 경질되자, 로날트 쿠만 감독은 이브라히모비치를 선발 라인업에 포함시켰고, 아약스는 2001-02 시즌의 에레디비시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그 다음 시즌, 이브라히모비치는 프랑스 챔피언 리옹과의 2002년 9월 17일 챔피언스리그 데뷔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2-1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그는 이 시즌의 챔피언스리그에서 5골을 득점하였고, 아약스는 밀란과의 8강에서 떨어졌다. 아약스에서의 마지막 시즌에 이브라히모비치는 2004년 8월 22일 NAC전에서 숨 막히게 하는 을 득점하며 주가가 상승하였고, 유로스포츠 시청자로부터 "올해의 골"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는 2003-04 시즌의 챔피언스리그에서 한골 (10월 22일의 셀타 비고전) 에 그쳤고, 아약스는 조별 리그를 통과하는데 실패하였다.

2004년 8월 18일, 이브라히모비치는 네덜란드와의 국제경기에서 아약스 팀 동료인 라파엘 판 데르 파르트에게 부상을 입혔고, 그 결과 판 데르 파르트가 이브라히모비치는 자신에게 고의로 부상을 입혔다고 고발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결과 이브라히모비치의 8월 31일 유벤투스행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2012년 5월, 판 데르 파르트는 이브라히모비치의 얼굴 사진 앞에서 골프 스윙을 연습하는 것을 녹화한 것으로 인해 둘 간의 싸움을 다시 일으켰다.


유벤투스


이브라히모비치는 아약스에서 유벤투스로 둥지를 옮겼다. 그는 즉시 팀의 최다 득점자인 다비드 트레제게 부상 문제로 빠지게 되자,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었고, 16골을 득점하였다. 시즌 종료에 임박했을때, 유벤투스는 레알 마드리드의  제의를 거절하였는데, 이는 미노 라욜라, 이브라히모비치의 에이전트로부터 시장 가치를 올리려는 공개적 모험 행위라고 밝혀졌다. 2005년 11월 14일, 그는 스웨덴 올해의 축구 선수로 선정된 선수들에게 수여하는 굴드볼렌을 받았다.

그 다음 시즌 이브라히모비치는 유벤투스의 달라진 공격 역할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상대적으로 부진한 시즌을 보냈고, 득점량이 줄었으며, 중심에서 밀려나갔다. 빌드업에 큰 영향을 받는 타겟형 선수로, 그의 어시스트 횟수는 늘어났다. 2005-06 시즌, 유벤투스의 팬들은 그가 아스널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비롯하여 몇몇 주요 경기에서 무력해지는 것에 대해 좌절감을 느꼈다. 유벤투스는 2006년 이탈리아 축구 스캔들로 인해 스쿠데토 2기를 박탈당하고, 세리에 B로 강등당하였다. 신임 코칭스태프들은 이브라히모비치를 비롯해 몇몇 주요 선수들을 유벤투스에 잔류시키려 하였으나, 그와 그의 에이전트는 이적하기를 원하였고, 라이올라는 이브라히모비치의 계약을 해지하기 위해 모험적인 합법 행위를 하였다.


인터밀란




2006년 8월 10일, 이브라히모비치는 4년 계약을 체결하며 터밀란의 선수가 되었는데, 이는 30세의 미드필더 파트리크 비에이라가 유벤투스에서 흑청 군단 (nerazzurri) 으로 갈아탄 지 며칠만에 발생한 일이었다. 이브라히모비치는 그가 유년 시절에 인테르나치오날레 팬이었다고 밝혔다.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 하에서 활약하며, 이브라히모비치는 피오렌티나전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흑청 군단에서의 생활을 시작하였고, 그는 15골로 팀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인테르는 17년만에 자력으로 리그 우승을 거두었다. 세리에 A가 종료될 당시 인테르는 역대 최다인 승점 97점을 쌓아 올렸고, 이 업적을 이브라히모비치는 바르셀로나 소속일 때에 재현하였다. 같은 시즌, 인테르나치오날레는 17연승을 거두며 유럽 주요 5대 리그 최다 연승 기록을 경신하였다. 이 기록은 레알마드리드의 22연승의 의해서 끝났다.

2007년 9월 16일, 이브라히모비치는 세리에 A 100경기 출장을 자축하였다. 2007년 그는 클럽과 재계약 하면서 2013년 6월 까지 팀의 선수로 남게 되었다. 그는 가장 많은 소득을 벌어들이는 축구 선수로 추산되었다. 그는 10월 2일 PSV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경기에서 멀티골을 삽입하였는데, 이는 2005년 12월 이후이자 흑청 유니폼을 입고 기록한 유럽대항전 첫 득점이었고, 그는 챔피언스리그 7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득점하였다. 파르마와의 2008년 5월 18일 리그 최종전에서, 그는 만성적인 무릎 부상으로부터 복귀하여 팀의 두 골을 모두 득점하여 완승을 이끌었으며, 팀은 또다시 스쿠데토 방어에 성공하였다.

2008년 11월 16일, 이브라히모비치는 현역으로 알스벤스칸에 복귀하지 않을 것이며, 해외에서 현역 은퇴할 것임을 시사하였다.

이브라히모비치는 2008-09 시즌을 개막전부터 네트 뒤쪽을 강타하면서 훌륭하게 시작하였다. 그의 볼로냐전 골은 "올해의 골"로 선정되었다. 그는 아드리아누의 크로스를 움직이지 않고서 힐킥으로 득점하였다. 이브라히모비치가 이 시즌동안 보인 기량은 주목의 대상이었으며, 볼이 없는 상황에서 영리하였고, 그의 패스는 라치오전에서 보여준 곡예스러운 패스처럼 뛰어났다. 그는 제노아전에서 득점하며 1달간의 무득점 침묵을 깼으나, 홈에서의 첫 패를 허락하였고, 당시 리그에서 홈무패 기록을 이어온 유일한 팀이었던 인테르나치오날레의 기록이 깨졌다. 아탈란타와의 리그 최종전에서, 2골을 득점하며, 2008-09 시즌의 리그 통산 25골로 마르코 디 바이오 디에고 밀리토를 1골차로 제치고 카포카노니에레에 등극하였다.


바르셀로나



라포르타는 밀라노에 있는 인터밀란의 회장 마시모 모라티와 대화하를 하기 위해 그가 기존의 비행 행선지를 우크라이나에서 스페인으로 바꾸면서 협상이 시작되었다고 말하였다. 이브라히모비치는 2009년 7월 23일, 미국 투어에서 벌어진 월드 풋볼 챌린지 대회에서 첼시와의 경기를 끝으로 바르셀로나와의 협상을 위해 인테르나치오날레를 중도에 떠났다. 인터밀란이 에토 조항과 합의를 보고 바르셀로나가 이브라히모비치를 가져가게 되면서 바르셀로나는 이브라히모비치가 2009년 7월 26일에 도착하여 다음 날, 메디컬 테스트에 응할 것임을 발표하였다. 이브라히모비치는 메디컬 테스트를 통과한 뒤 캄 노우의 60,000명 관중들 앞에서 입단식을 가졌다. 그는 5년 계약을 €46M에 체결하였고 에토 (€20M의 가치) 를 인테르로 보냈으며, 알략산드르 흘렙을 임대 (€10M의 바이아웃 옵션) 보냈으며, €250M 방출 조항으로 이브라히모비치의 가치는 €66M이 되었다. 그러나, 흘렙 협상은 결렬되었고, 이브라히모비치의 값은 바르셀로나에서 기타 비용을 추가하면 €69.884M이었다. 인터밀란의 기록에는 €69.5M으로 등록되어 있었고, 그러나 인터밀란의 비용 (약 4.5%) 는 공정 분배로 유소년 클럽에 재투자되었다. 

2009년 8월 23일, 이브라히모비치는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에서 리오넬 메시에게 한 골을 도우며 2009-10 시즌의 주요 경기에 데뷔하였다. 그 다음에 그가 출전한 경기는 UEFA 슈퍼컵 경기였다. 그 다음 경기는 3-0으로 이긴 스포르팅 히혼과의 라 리가개막전이었고, 이 경기에서 한 골을 득점하였다. 이브라히모비치는 출전한 다음 세 경기에서 연속으로 득점하였고, 출전한 처음 네 경기에서 연속으로 득점하는 클럽 신기록을 세웠다.

10월 2일, 루빈 카잔과의 챔피언스리그 조별 리그 경기에서 바르셀로나 이적 후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득점에 성공하였다. 닷새 후, 그는 멀티골을 득점하며 레알 사라고사를 6-1로 파괴하였고, 7경기 출전하여 7득점을 올리며 득점 선두에 오름과 동시에 바르셀로나를 리그 선두에 올렸다. 그러나, 11월 7일, 이브라히모비치는 허벅지 부상으로 3주동안 결장하였다. 그는 12주째의 레알 마드리드전에서 티에리 앙리 교체 투입되었고, 그의 시즌 8호골을 득점하였다. 그는 바르셀로나에서의 처음 15번의 리그 경기 중 2경기를 제외하고 11골 4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바르셀로나는 2009년 12월 19일에 에스투디안테스와의 FIFA 클럽 월드컵 2009 결승전 승리로 2009년을 끝냈다.

2010년 1월 5일, 이브라히모비치는 1-2로 패한 세비야와의 코파 델 레이 2009-10 16강 1차전에서 팀의 유일한 골을 득점하였다. 1월 20일, 그는 2009년 UEFA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다. 그의 2010년 첫 골은 2월 14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에서 나왔다. 그는 이어지는 슈투트가르트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 출전하였다. 그는 3월 6일, 알메리아전에서 퇴장 명령이 내려졌고, 바르셀로나의 이의는 기각되었으며, 그는 1경기 출장정지 징계가 내려졌다. 징계에서 돌아와 아틀레틱 빌바오전을 앞두고 워밍업을 하던 그는 장딴지 근육의 염단 부상을 당해 앞서 1차전 원정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던 아스널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과 마드리드와의 엘 클라시코 출전이 좌절되고, 팀이 각각 4-1, 2-0으로 승리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으며, 다음 데포르티보 라코루냐전에도 결장하였다. 그는 에스파뇰과의 경기에서 82분에 교체 투입되며 복귀하였다.

이브라히모비치는 이 시즌에 16골을 기록하며 끝냈고, 바르셀로나는 38경기에서 99점을 쌓으며 라 리가 우승을 거두었다. 그는 8월 14일, 1-3으로 패한 세바야와의 수페르코파 데 에스파냐의 경기에서 마지막 골을 득점하였고, 8월 25일, 그는 AC 밀란과의 트로페우 조안 감페르 경기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르었고, 언론에서는 그가 주제프 과르디올라와 3월부터 대화한 적이 없듯이 감독과의 관계가 뒤틀어졌다고 주장하였다.


AC밀란
















2010년 8월 28일, 밀란의 공식 웹사이트에 2010-11 시즌을 위해 이브라히모비치를 확보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는 2010-11 시즌동안 밀란으로 임대되었으며, 조항에 따라 시즌 말에 바르셀로나로부터 €24M의 가격에 그를 구매할 수 있는 권한도 부여되었다. 그는 9월 11일, 0-2로 패한 체세나전에서 새 팀의 데뷔전을 가졌고, 그는 경기 막판에 페널티킥을 실축하였으나, 9월 15일에 오세르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밀란 1호골을 득점하였다. 11월 14일, 이브라히모비치는 1-0으로 승리한 친정팀 터밀란과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 경기에서 결승골의 주인공이 되었다. 11월 20일, 그는 피오렌티나전 45분에 오버헤드 바이시클 킥으로 시즌 7호골을 득점하였고, 알레샨드리 파투를 제치고 팀내 득점 1위가 되었다. 2010년 12월 4일, 브레시아와의 경기에서, 그는 케빈프린스 보아텡의 선제골을 도와 일찍이 리드를 잡았고, 페널티 박스 끝쪽에서 강력한 으로 팀의 3번째 골을 득점하며 3-0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2010년 12월 12일, 그는 볼로냐와의 경기에서 보아텡에의 골을 도운 뒤 막판에 추가골을 넣으며 또다시 3-0 승리를 가져다 주었고, 모든 대회 통틀어 21경기 출전 13골 8어시스트를 기록하였으며, 그는 언론과 판 바스턴 당사자로부터 밀란 레전드 마르코 판 바스턴과 견주되었다.

이브라히모비치는 1-1로 비긴 바리와의 2011년 3월 경기에서 마르코 로시 복부 주먹으로 가격한 것으로 인해 레드카드를 받아 3경기 출장정지 징계가 내려졌다. 그는 2012년 2월에도 1-2로 홈에서 패한 피오렌티나와의 경기에서 부을 욕한 것으로 추정되어 3경기 출장 정지가 또다시 내려졌다. 이브라히모비치는 자신을 변호하였으나 자신에게 좌절감만 가져다주었다. 밀란의 공격은 로마전에서 교착 상태에 빠졌으나, 그는 밀란에서 첫 스쿠데토를 차지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결과, 그는 나중에 타이틀 2개를 취소당한 유벤투스에서의 리그 우승을 포함하여 3개국 5개 클럽에서 8년 연속 리그 우승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하였다. 2011년 6월 18일, 밀란과 바르셀로나 간의 모든 합의가 마무리되었다.

2011-12 시즌의 첫 공식 경기인 터밀란과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경기에서, 이브라히모비치는 득점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으로 동점골 득점하였고, 이 경기에서 밀란은 역전승을 거두었다. 그는 2-2로 비긴 라치오와의 세리에 A 2011-12 첫 경기에서도 시즌 리그 1호골을 득점하였다. 그는 체코의 빅토리아 플젠과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팀의 3번째 골을 페널티 스폿에서 득점하였고, 팀의 두번째 골을 도왔다. 이브라히모비치는 다수의 밀란 경기에서 득점하며 스스로를 운반가방 꼬리표로 정의하였으나, 여전히 많은 골을 도우기도 하였다. 그는 바테 보리소프와의 다음 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1골, 4-1로 이긴 파르마전에서 1골, 3-2로 이긴 로마전에서 멀티골을 추가하며 10월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11월에도 이 스웨덴인은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는데, 바테와의 챔피언스리그 리턴 매치와 카타니아와의 리그 경기에서 또다시 득점하였다. 큰 기대를 모은 밀란과 바르셀로나의 경기에서, 이브라히모비치는 친정팀을 상대로 1-1 동점골을 득점하였으나, 결국 바르셀로나에게 산 시로에서 2-3으로 패하였다. 그는 키에보전에서 두골을 추가하며 11월을 마무리하였는데, 그의 키에보전 첫 골은 자신의 세리에 A 100호골이었고, 두번째 골을 페널티 스폿에서 득점하였다. 12월에도 우수한 기량을 발휘하였는데, 그는 5번의 세리에 A 경기에서 한골씩 득점하였다. 2012년 시작도 상승세로 시작하였는데, 그는 아탈란타와의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켰다. 그는 노바라전 이후로 16경기 출전 14골로 세리에 A 득점 선두를 달렸는데, 그가 득점한 두번째 골은 장난기가 있는 백힐로 기록하였다. 2012년 1월 5일, 나폴리와의 연속된 세리에 A 경기에서 이브라히모비치는 오프볼 상황에서 살바토레 아로니카의 따귀를 때린 것으로 인해 레드카드를 수집하였고, 그는 밀란의 다음 3경기에 결장하게 되었다. 2월 15일, UEFA 챔피언스리그 2011-12 16강 1차전에서 이브라히모비치는 호비뉴의 두골을 득점하고,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아스널을 4-0으로 무너뜨렸다. 2012년 3월에도 그는 득점행진을 이어나갔는데, 4-0으로 이긴 팔레르모와의 스타디오 렌초 바르베라원정경기에서 해트트릭을 하였다. 처음 두 골은 호비뉴가 3번째 골을 위르비 에마뉘엘손의 도움으로 기록하였다. 이어지는 3경기에서 그는 4골을 득점하였는데, 멀티골을 로마전에서 기록하였고, 이에 따라 그의 스탯은 23경기 출전 22골이 되었다. 그는 시에나전에서의 2골로 그가 전에 기록한 리그 개인 최다골인 25골을 넘었다. 그는 32경기 출전 28골로 시즌을 마쳤다.


파리생제르망



2012년 7월 17일, 파리 생제르맹은 이미 이브라히모비치의 개인적 조항에 합의를 보았고, 스트라이커의 활동 및 경제적 권한을 밀란으로부터 가져가기로 협상이 마무리되었다고 확인하였으며, 본래 이적료는 €20M 정도로 책정됨에 따라 이브라히모비치의 이적은 합계 이적료로 가장 비싼 이적이 되었다. 합산된 가치는 약 €180M으로 추산되며, 이 금액은 니콜라 아넬카의 클럽 기록을 단번에 깼다. 그의 3년 계약은 €14M의 순연봉에 보너스 (이는 밀란을 떠날 때 연간 벌어들이던 금액보다 €2M이 높았다.) 를 더 받으면서, 카메룬 사뮈엘 에토 다음으로 가장 소득이 높은 선수가 되었다. 다음 날, 이브라히모비치는 계약서에 서명하였고, 기자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의견을 말했다: "이는 내 축구선수로써의 삶에 있어 큰 한걸음이며 또다른 꿈이 실현된 것입니다. 저는 관여하고 싶은 프로젝트에 참가하여 기쁩니다. 저는 클럽 역사의 일부가 되고 싶습니다. 저는 다른 이유는 없고 우승하기 위해 여기 왔습니다.

이브라히모비치는 로리앙과의 리그 1 2012-13 개막전에서 2-0으로 뒤지고 있는 후반전에 2골을 득점하며 2-2로 패배에서 팀을 구제하였다.그는 2-1로 이긴 과의 경기의 전반전에 멀티골을 득점하며 처음 3경기에서의 3무 이후 2012-13 시즌의 첫 승을 따냈다.

2012년 9월 18일, 디나모 키예프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2012-13 A조 1차전에서, 이브라히모비치는 카를로 안첼로티하에 출전한 5번째 경기에서 6호골을 페널티킥으로 득점하였다. 그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6클럽을 대표하며 득점한 첫 선수로 기록되었다. 2012년 10월 8일, 이브라히모비치는 호나우지뉴 로랑 블랑에 이어 스페인의 엘 클라시코, 이탈리아의 데르비 델라 마돈니나, 프랑스의 마르세유-파리 생제르맹 더비에 모두 참가한 3번째 선수가 되었다. 그는 스타드 벨로드롬에서 열린 리그 1의 르 클라시크 더비에서 PSG의 두골 (첫골은 백힐로 두번째 골은 프리킥으로) 을 모두 득점하였고, 경기는 2-2로 종료되었다. 2012년 12월 11일, 그는 4-0으로 이긴 발랑시엔과의 원정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득점하였다.

2013년 1월, 이브라히모비치는 브라질인 윙어 네네가 떠나면서 등번호 10번을 받았다. 2013년 4월, 이브라히모비치는 2-2로 비긴 친정 클럽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득점하였다. 그러나, PSG는 캄 노우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 1-1로 비기며 원정 다득점으로 떨어졌다. 그는 UEFA 챔피언스리그 2012-13에서 도움 7개로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2013년 5월 12일, 파리 생제르맹은 리옹 원정에서 1-0으로 이기며 1994년 이래 처음으로 리그 1 우승을 거두었다. 그는 이 시즌의 리그 1을 30골로 득점왕을 차지하며 마무리하였는데, 그는 장피에르 파팽의 디비시옹 1989-90시즌 이후로는 처음으로 업적을 달성하였다. 2013년 5월 20일, 프로축구선수 국가 연합(UNFP) 에 의해 리그 1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




2016년 7월 1일, 이브라히모비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1년 계약을 맺었으며, 인테르 시절에 함께했던 무리뉴 감독과 7년 만에 재회하였다.

즐라탄은 맨유로 합류한 이후, 갈라타사라이와의 프리 시즌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여 팀의 5-2 승리를 이끌었고, 16-17 커뮤니티 실드 우승을 이끌었으며, 리그 초반에 4골을 몰아쳤지만, 그 이후로 골이 없어 무득점 부진에 시달려 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하지만, 10라운드 스완지 시티와의 경기에서 멀티골 포함한 2골을 넣어 그동안의 부진을 씻어냈으며, 개인 클럽 커리어 통산 400골과 EPL 25,000 호 골을 달성하였다. 덤으로 EPL 이 주의 베스트11에 선정되었다.

하지만, 2016년 11월 19일에 있을 아스널과의 리그 홈 경기에는 스완지와의 리그 경기 도중 후반 31분 르로이 페르에게 파울을 범해 경고를 받으면서 시즌 누적 5장이 되어 출전하지 못했지만, 2016년 11월 25일(한국시각 새벽)에 페예노르트와의 유로파리그 조별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여 4-0 대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2016년 11월 24일(한국시각)에 무리뉴가 즐라탄이 맨유와의 연장계약을 공식 발표함으로써 즐라탄은 2018년 여름까지 맨유에 잔류하게 되었다.

그 이후, 즐라탄은 웨스트 햄과의 리그 13라운드 경기와 EFL 컵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였으며 (리그에서는 1골, EFL 컵 경기에서는 2골 기록.) 뒤이어 2016년 12월 9일 오전 3시(이하 한국시각) 우크라이나 오데사 초르노모레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르야 루한스크와의 2016~2017 UEFA(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 A조 최종전에서 후반 막판 팀의 승리를 결정짓는 쐐기골을 터뜨려 맨유를 32강 진출에 성공하는 등 연일 공격포인트를 쏘아 올리며 부활을 알리고 있다. (지난달 페예노르트와의 유로파리그 어시스트까지 더하면 최근 6경기 연속 공격포인트(7골1도움)의 맹활약이다.)

2016년 12월 11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포드서 열린 맨유와 토트넘 홋스퍼의 2016/2017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5라운드(1-0 맨유 승)를 풀타임 소화함으로써 이브라히모비치는 지난 1999년 스웨덴 말뫼 1군 데뷔 이후 17년 만에 프로 통산 700경기 출전이라는 대업을 이뤘다.

2016년 12월 18일(이하 한국시간 새벽) 웨스트브로미치와의 리그 원정 경기에서 멀티골을 포함한 2골을 기록하여 팀의 2-0 승리를 안겼으며, 영국 축구통계전문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 으로 부터 평점 8.5 점을 받았다. 2016년 12월 18일(한국시각)에는 중국으로부터 1억 2000만 파운드(약 1772억 원) 제안을 받았으나, 맨유와의 재계약을 위해 거절하였다.

2016년 12월 27일(이하 한국시간 새벽)에 열린 선덜랜드와의 홈 경기에서 1골 2도움을 기록하여 팀의 3-1 승리를 이끌었으며, 이 날 골을 기록한 즐라탄은 파리 생제르망(33골)과 맨유에서의 기록을 합쳐 2016년 한 해만 50골을 기록했다. 경기 이후, 유럽축구통계전문인 영국 후스코어드 닷컴으로부터 폴 포그바와 함께 양 팀 최고 평점인 9.5를 부여받았다.

2017년 1월 1일(이하 한국시간 자정)에 열린 미들즈브러와의 홈 경기에서 전반 38분에 앙토니 마르시알의 크로스를 받아 태권슛으로 골을 기록하였지만, 빅토르 발데스를 위협하는 동작이었다고 판단한 심판이 반칙을 선언하는 바람에 리오넬 메시와 함께 2016년 득점 공동 1위를 기록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1위인 리오넬 메시는 51골을 기록하였고, 2위인 즐라탄은 50골을 기록하여 2016년을 마감했다.)

그 후, 즐라탄의 골이 석연찮은 판정으로 인하여 무효되어 논란이 일자, 현지 전문가들과 전 EPL 주심인 하워드 웹이 한결같이 오심이라고 의견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리고 즐라탄은 2017년 1월 4일(한국시각)에 PFA(잉글랜드프로축구선수협회)로부터 델레 알리를 포함해 아담 랄라나, 세사르 아스필리쿠에타, 디미트리 파예, 조던 픽포드를 제치고, 이 달(2016년 12월)의 선수에 선정되었으며, 맨유 구단으로부터 2016년 12월 선수에 선정되었다. 그리고, 2017년 1월 13일(한국시각)에 EPL 사무국으로부터 폴 포그바, 게리 케이힐, 디에고 코스타, 델레 알리, 크리스티안 에릭센, 알렉시스 산체스, 아담 랄라나 등 경쟁자들을 제치고, 2016/2017 EPL 12월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12월 이달의 선수상으로만 3번째 수상을 기록하였다.

12월 선수 수상 이후, 즐라탄과 동갑내기 공격수인 디미타르 베르바토프는 "즐라탄이 EPL을 정복하기까지 만 3개월이 걸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 같다"며 "현재 경기력을 2년 이상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치켜세웠으며, "즐라탄은 체력 안배를 잘할 뿐 아니라 경기를 이해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과거 맨유의 전설이었던 에리크 칸토나도 자신의 후계자로 즐라탄을 지목했으며, 칸토나는 12일 현지 언론들과 인터뷰를 통해 "2017년, 오랜 통치 후 나는 마침내 언론인들에게 받은 가장 공격적인 선수라는 타이틀을 포기했다. 즐라탄은 나의 타고난 후계자로, 나의 유산을 이어받을 것이다"며 즐라탄을 높게 평가했다.

그 후, 2017년 1월 16일(한국시각)에 열린 노스웨스트 더비 경기에서 팀이 0-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후반 헤딩 동점골을 넣어 리그 14호 골을 달성하였고, 팀은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경기 이후, 영국 축구 통계 전문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으로부터 평점 7.4점을 부여받았다. 그 이후, 리그 2경기 동안 골이 없었으나, 2017년 2월 6일 오전 1시(한국시간) 영국 레스터 킹 파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17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24라운드에서 전반 44분 발렌시아의 크로스를 문전에서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추가골을 뽑아냈다. 이날 한 골을 추가한 즐라탄은 맨유 유니폼을 입은 첫 시즌 20골 고지에 올랐다. 그리고, 2013년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떠난 후 맨유에서 처음으로 20골을 터트린 선수가 되었으며, EPL 역사상 최고령 한 시즌 득점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35세 125일에 시즌 15호골 기록.)

그리고, 즐라탄은 2017년 2월 17일 오전 5시 5분(한국시간)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생테티엔과의 2016/2017 UEFA 유로파리그 32강 1차전에서 반 15분 프리킥 선제골과 후반 30분, 43분에 해트트릭을 기록하여 3-0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 날 즐라탄은 맨유 입단 이후, 첫 해트트릭을 달성했으며, 영국 `후스코어드닷컴`으로부터 평점 10점을 부여받았다.

그로부터 3일 뒤인 2017년 2월 20일 오전 1시 15분(한국시간) 영국 블랙번에 위치한 에우드 파크에서 열린 블랙번과의 2016-17 에미레이츠 FA컵 5라운드(16강)에서 후반 17분에 교체 투입하여 후반 30분에 역전골을 기록하여 2-1 역전승을 거둬 8강 진출에 성공하였다. 덤으로, 즐라탄은 2017년 2월 27일 새벽(한국시간)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17 EFL컵 결승전에서 멀티골을 포함한 2골을 기록하여 사우샘프턴을 3-2로 누르고, 리그컵 우승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축구통계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으로부터 평점 8.76점을 받았다. 이로써 즐라탄은 맨유 입단 후, EFL컵과 커뮤니티 실드에서 두 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으며, 우승청부사의 명성을 이어갔다.

그리고, 2017년 3월 4일(한국시간)에는 약 10만 9000명의 투표 참가자 중 79%의 득표율을 기록하여 맨유 2월의 선수상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2016/2017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27라운드 본머스와의 홈 경기에서 즐라탄이 타이론 밍스에게 머리를 밟힌 후, 곧바로 팔꿈치를 사용해 보복성 반칙을 가한 영상이 포착되었고, 결국 2017년 3월 8일(한국시간)에 잉글랜드 축구협회로부터 3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아 14일에 있을 첼시와의 FA컵 경기부터 미들즈브러,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WBA)과의 리그 2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됐다.

그 이후, 2017년 4월 5일(한국시간)에 있었던 에버턴과의 리그 31라운드 경기에서 복귀전을 가졌고, 후반 추가시간에 PK 골을 기록하여 1-1 극적인 무승부와 동시에 20경기 무패(10승 10무)를 이어갔으며, 2017년 4월 9일(한국시간)에 있었던 선덜랜드와의 리그 32라운드 경기에서 1골 1도움의 맹활약을 펼치면서 맨유의 3-0 승리의 주역이 됐다. 그 날 경기에서 골을 기록한 즐라탄은 30살 이후 터트린 250번째 골을 기록함과 동시에 프로통산 420골을 넣은 이브라히모비치는 총 득점의 60%를 30살 이후에 기록하였다.

그러나, 2017년 4월 21일(한국시각)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린 안더레흐트와의 2016~2017시즌 유로파리그 8강 2차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공중볼 경합 후 착지 과정에서 오른발을 다쳐 무릎 인대가 손상되는 부상을 입어 시즌 아웃되었다.

그러나 맨유와의 재계약을 협상하였지만 부상여파로 결국 불발되어 1년만에 팀을 떠나 자유계약 신분이 되었다.

16-17 시즌 후, 맨유의 지원을 받아 재활 중이던 즐라탄은 2017년 8월 24일(한국시각)에 1년의 복귀 계약을 맺었고, 등번호는 10번을 받았다.


즐라탄 어록

1. 즐라탄은 테스트를 받지 않는다.

이브라히모비치는 지난 2001년 말뫼에 있을 당시 아스널로부터 입단 테스트 제의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하고 아약스로 이적했다. 당시를 회상한 이브라히모비치는 "나는 내 자신을 증명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충분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2. 절대 아니다. 비행기를 샀다. 그게 훨씬 빠르다.

이브라히모비치는 포르셰를 샀다는 루머에 시달렸다. 불쾌한 표정으로 이브라히모비치가 한 말이었다.

3. 내가 어찌나 완벽한지 웃지 않을 수 없다.

이브라히모비치의 원래 성격을 잘 알 수 있는 발언이다.

4.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내가 없는 월드컵은 볼 가치가 없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유럽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스웨덴은 포르투갈에 패해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경기가 끝나고 이브라히모비치가 남긴 말이다.

5. 가레브가 축구공으로 하는 걸 나는 오렌지로 할 수 있다.

노르웨이 공격수 욘 카레브의 비난에 이브라히모비치는 '오렌지'를 들먹이며 응수했다.

6. 없다. 그녀는 이미 즐라탄을 가졌다

아내의 생일 선물로 무엇을 주었냐는 질문에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이브라히모비치는 자신감 있는 어투로 말했다.

7. 아파트를 찾고 있다. 만약 없다면 호텔을 사 버리겠다

파리 생제르맹으로 이적한 이브라히모비치는 새로운 집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그가 한 말이다

8. 내가 왼쪽으로 가니 그가 따라왔다. 내가 오른쪽으로 가니 그가 또 따라왔다. 하지만 다시 왼쪽으로 갔을 때 그는 핫도그를 사러 갔다

이브라히모비치가 전 리버풀 중앙 수비수 스테판 앙쇼를 두고 한 말이다. 리버풀과 대결에서 이브라히모비치는 앙쇼의 밀착마크를 받았다. 하지만 결국 앙쇼는 지쳤고 이브라히모비치를 따라올 수 없었다.

9.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 나는 휴가나 갈 것이다

유로 2012에 대한 예상을 묻는 질문에 본선 진출에 실패한 이브라히모비치는 본인의 휴가 계획을 밝혔다.

10. 나를 사는 것은 네가 페라리를 사고 있는 것이다
이브라히모비치는 종종 자신을 페라리에 비유한다. 바르셀로나 시절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페라리를 사놓고 피아트처럼 운전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11. 다친 즐라탄은 어느 팀에나 심각한 문제다
이브라히모비치의 부상은 당연히 소속팀에 큰 문제다.
12. 여동생을 데리고 와라. 누가 게이인지 보여주겠다
이브라히모비치에게 게이냐고 묻는 기자에게 일침을 날렸다.
13. 나도 불꽃놀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내 집을 태우진 않는다
화장실에서 불꽃놀이를 하다 집을 태운 발로텔리에게 이브라히모비치가 던진 말이다.
14. 즐라탄 스타일
한 기자가 그에게 "당신은 스웨덴 스타일인가? 아니면 유고슬라비아 스타일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짧게 대답했다.
15. 난 11개 포지션에서 뛸 수 있다. 좋은 선수는 어디서든 뛸 수 있다
필드 플레이어는 물론이고 골키퍼까지 소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느껴지는 발언이다.
16. 당신은 지금 신을 보고 있다
한 리포터가 이브라히모비치에게 월드컵 플레이오프 진출팀을 물어보자 그는 "신만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에게 물어보긴 어렵다"라고 대답하자 이브라히모비치는 "왜? 지금 보고 있잖아"라고 말했다.
17. 한 번 더 비난한다면 고의로 네 다리를 부러뜨리겠다
스웨덴과 네덜란드 경기에서 판 데 바르트는 다리를 다쳤다. 그는 이브라히모비치를 강하게 비난했다. 이브라히모비치는 참지 않았다. 당시 판 데 바르트는 이브라히모비치 소속팀 아약스의 주장이었다.
18. 오니우는 헤비급 복서 같았다. 하지만 나를 제압할 순 없었다
이브라히모비치는 지난 2010년 훈련장에서 동료 오구치 오니우와 싸웠다. 말싸움이 아닌 주먹질이었다. 오니우는 키 195cm, 몸무게 100kg에 육박하는 거구다.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치열한 다툼이었다.
19. 루니에게 파리행을 추천하겠다. 하지만 즐라탄이 더 많은 골을 넣는다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적설이 나온 웨인 루니에 대해 파리 생제르맹행을 추천하면서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나타내는 이브라히모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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