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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세계최강의 부대 영국 SAS

리키마루 2017. 7. 22. 10:55

세계 최강의 특수부대는 무엇인가? 최강의 인력을 가진 것은 대한민국의 특수부대들이지만, 세계 최고의 부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영국의 SAS이다. 

SAS은 영국 육군에 소속된 특수부대이다. SAS는 Special Air Service의 준말이다.

 

 

 

SAS 엠블럼

 

 

 

그 시초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1년 아프리카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에게 매번 박살나며 막대한 전사자와 노획물자만 넘겨주던 영국군이 어떻게든 반격방법을 찾던 중, 육군 대위 데이비드 스털링이 '요즘 독일군의 공군력이 강력하니, 적 비행장에 직접 낙하산으로 병력을 투입해 항공기들을 직접 공격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스털링은 자신에게 잘못 배달된 낙하산을 갖고 놀다가, 실제로 비행기에서 낙하하다 허리를 다친 뒤 병원에서 요양 중에 그 생각을 떠올렸다.

 


하지만 실제로는 첫 작전은 참담한 실패로 돌아갔다. 한번도 이런 식의 작전경험이 없었기에 수송기는 엉뚱한 곳에 부대원들을 강하시켰고, 장비와 병력 대부분은 흩어져서 다시는 집결하지 못했다. 예정대로 실제로 진행된 것은 복귀를 위해 대기하던 장거리 정찰대(L.R.D.G)의 트럭 뿐이었는데, 이 트럭을 타고 복귀하던 중 스털링은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었다. 기관총을 여러 정 장착하고 냉각장치를 개조한 미국산 윌리스 지프와 시보레 트럭에 연료, 식량, 무기를 가득 싣고 항해를 하듯 사막을 가로질러 적의 후방을 기습공격하고 다시 차를 타고 복귀하는 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적의 항공 정찰을 피하고 피로를 막기 위해 뜨거운 낮에는 위장한 채 잠을 자고, 야간을 이용해 이동하는 식으로 사막을 멀리 돌아 적진 깊숙히 들어갈 수 있었고, 실제로 작전은 성공해 독일군은 그 이후로 공중전에서 잃는 전투기 숫자보다 SAS에 의해 파괴되는 전투기 숫자가 더 많을 지경이 되었다. 심지어 SAS에게 털려 새로 받았는데 그 날 SAS가 와서  박살내버리는 자비심 없는 일들을 저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들에게 시달린(?) 쪽으로 영국 공군 본대도 있었다. SAS는 평소 영국 공군 기지를 이용해서 침투 훈련을 빈번하게 했다. 이 때문에 공군 장병들은 SAS의 침투를 막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SAS가 침투에 성공한 뒤엔 당연히 상관에게 신나는 갈굼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여기에 맛들인 영국군 사령부가 특수작전을 너무 확대한 나머지, 정규군의 보조를 맞추는 정도로 생각하지 않고 무리하게 대규모 반격 작전의 일부로 집어넣었다. 때문에 이들 중 상당수는 보강된 독일군 진지들을 뚫지 못하고 전사하는 등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후, 결정적으로 엘 알라메인 전투에서 정규군을 통한 지상전의 대승리가 영국군 수뇌부에서 비정규전에 집중할 필요를 굳이 못 느끼게 해서 도로 찬밥 신세가 되고 말았다.

 

2차세계대전 당시의 SAS대원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잠시 해체되기도 했지만 이미 노쇠할대로 노쇠해진 "늙은 사자" 영국에게는 기존의 대규모 정규군을 존속할 여력이 없었고, 해체된지 2년 만에 영국 본토의 국방의용군(Territorial Army)내에 SAS 21연대가 재창설되었다.

1948년부터 시작된 중국의 지원을 받는 말라야 민족해방군과 말라야 공산당에 의해 시작된 말라야 위기에는 식민지군에서 차출된 "말라야 정찰대(Malayan Scouts)"가 옛 SAS의 노하우를 살려 활약하는데 이들은 곧 SAS 22연대로 변신하게 된다. 이들은 반영 민족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에 맞서 싸웠다.

이후 친공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정권이 반외세를 외치며 말레이시아 공산당을 지원하며 벌어진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전쟁에서도 공산 게릴라로 가장한 인도네시아 정규군과 싸웠다. 최종적으로 정부를 지키고 민심을 돌리는데 성공하며 이는 성공적인 게릴라전의 대명사로 여전히 거론되고 있다.

훗날 월남전에서 미군이 막대한 병력과 물자를 소모하고도 결국 베트남의 민심을 얻지 못해 패배한 것에 비해 큰 교훈이 되었다. SAS는 이 작전에서 FN FAL과 같은 고위력 자동소총이 특수임무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 후에 영국군 최초로 M16을 도입했다. 이후 M16은 영국군 내에서 아말라이트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SAS의 상징이 되었다.

 

한편, 이들은 60년대 이후로 테러리스트와 대테러전에 관한 개념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인질구출이나 테러 진압작전의 개념을 만들었다. 특히 북아일랜드에서 IRA와의 시가전 경험을 쌓았다.

북아일랜드에서의 실전경험 등을 통해 대테러전에서 최고급의 기량을 쌓았으며, 외국 대테러부대와의 잦은 교류를 통해 대테러전 노하우를 공유, 발전시켜 나갔다. 1977년에 있었던 GSG-9의 "마법의 불꽃" 작전 당시 SAS 고문관들이 섬광탄을 제공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1980년 이란 대사관 인질사건 (님로드 작전)당시, 과감한 진압 작전을 통해 테러범들을 제압하고 인질들을 1명 빼고 모두 성공적으로 구출하며 자신들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렸다. 이때 이들이 사용한 장비들과 민무늬 검은색 전투복과 방독면, MP5 같은 특징들은 밀리터리 매니아들에게는 SAS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고, 그들이 보여준 진압작전 노하우와 장비들은 다른 나라 대테러부대들도 널리 받아들이는, 일종의 유행이 되었다.

1972년 미르바투전투

                                                                                                                   

 

SAS의 또 하나의 특징은 대원들간 계급이 없다는 점이다. 부대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계급을 반납하고 SAS대원(Trooper‧병)으로만 취급 받는다. 이런 시스템은 부대원들을 강한 유대감으로 결속시키고 작전 수행 능력을 배가시킨다.  SAS는 세계 최강의 특수부대 요원이란 자긍심을 갖고 임무를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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